행정행태 13. 문제제기를 흐리는 답변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행정청 답변이 민원인의 문제제기를 흐리는 방식은 대체로 다섯 가지 패턴으로 나타난다.
– 첫째, 질문의 대상을 바꾼다.
. 민원인은 “우수 배수시설의 실제 배출방향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 그런데 답변은 “개발행위에 해당해야 관여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물론 개발행위 해당성이 중요한 쟁점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장 확인 이후 판단해야 할 항목 중 하나다.
: 현장에 우수 배수시설이 있는지, 관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배출이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개발행위 여부만을 앞세우면, 민원인의 문제제기는 좁아진다.

처음 질문은 “현장에 무엇이 있는가”였다. 답변은 “그것이 우리 소관 개발행위인가”로 바뀌었다.

– 둘째, 행정 확인 문제를 민사 분쟁으로 치환한다.
. 우수 배수로 인해 하측 토지에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되면, 행정청은 이를 쉽게 “개인 간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민원인이 제기한 문제는 손해배상 책임만이 아니다.
: 민원인은 우수 배수시설이 공공 우수관이나 구거로 연결되지 않고 석축 배면 토사로 배출되는 구조인지, 그 구조가 석축과 하측 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 손해배상은 민사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배수시설의 설치상태, 배출방향, 불법 석축·형질변경과의 구조적 관련성 확인은 행정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답변이 “민사로 해결할 문제”라는 말로 정리되면, 행정 확인 문제는 사라진다.

– 셋째, 소관 부서를 흐린다.
. 우수 배수시설은 하수, 개발행위, 건축, 토목, 재난안전, 농지, 구거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이런 사안일수록 행정청 내부에서 협의해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민원인이 부서 사이를 따라다니게 된다.
: 하수는 하수대로, 우수는 우수대로, 개발행위는 개발행위대로, 석축은 석축대로 설명을 다시 해야 한다.

이때 민원인의 문제제기는 다시 흐려진다.
: 민원인은 “우수 배수시설의 위험성과 위법성 확인”이라는 하나의 현장 문제를 제기했지만, 행정청 내부에서는 그것이 각 부서의 작은 조각으로 쪼개진다.
: 문제는 쪼개졌는데, 전체를 다시 묶어 판단하는 주체는 뒤에 숨게 된다.

– 넷째, 조사해야 할 사실을 민원인이 입증해야 할 사실로 바꾼다.
.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석축과 우수 배수시설이 동시에 조성되었다는 취지로 민원을 접수하면 검토가 가능하다”는 구조다.

민원인이 설치자가 아니고, 설치 시점과 공사 주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동시에 조성되었다는 자료를 가져오라”는 요구는 사실상 민원인에게 행정조사 책임을 넘기는 효과를 낸다. 민원인이 단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장의 현재 상태다.
: 맨홀의 위치, 깊이, 물의 흐름, 석축 배면으로의 배출 정황, 하측 토지 침수 정황 정도다.
: 그러나 설치 시점, 시공자, 공사 당시 설계, 인허가 여부, 석축·형질변경과의 일체성은 행정청이 자료와 권한을 통해 확인해야 할 영역이다.

조사해야 할 사실을 민원인이 먼저 증명해야 할 사실로 바꾸는 순간, 민원인의 문제제기는 “현장 확인 요청”에서 “입증 실패”의 문제로 바뀐다.

– 다섯째, 절차적 각하를 본안 판단처럼 사용한다.
. 행정심판에서 각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우수 배수시설의 설치상태나 배출방향, 위법성, 위험성이 본안적으로 판단된 것은 아니다.

각하는 보통 심판청구의 대상성, 적법성, 처분성 등 절차적 요건에서 문이 닫힌 결과다. 그런데 행정청이 이후 정식 국민신문고 민원에 대하여도 “이미 행정심판에서 각하되었다”는 식으로 답하면, 절차 판단이 사실상 본안 판단처럼 기능한다.

이 역시 민원인의 문제제기를 흐리는 방식이다. 민원인은 다시 현장조사를 요구했는데, 답변은 과거 행정심판 각하로 이동한다. 현재의 조사 필요성은 사라지고, 과거 절차의 결과만 남는다.

관련 기록:사건기록 13. 민원인이 물은 것은 “누가 책임지느냐”가 아니라 “현장에서 확인했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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