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청의 회피성 답변은 대체로 노골적인 거부보다 더 복잡한 형태를 지닌다. 이 사건에서도 ○○군청이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만 답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답변의 방향이었다.
회피성 답변은 보통 다음의 단계를 거친다.
– 첫째, 문제를 행정 사안이 아니라 민사 사안으로 이동시킨다.
. 우수 배수로 인해 인접 토지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 행정청은 이를 손해배상이나 이웃 간 분쟁의 문제로만 볼 수 있다.
. 물론 실제 손해배상 여부는 민사 문제일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이 곧 행정청의 현장 확인 의무 또는 위반 여부 검토 필요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 둘째, 소관을 불명확하게 만든다.
. 우수 배수시설은 건축, 개발행위, 토지 형질변경, 석축, 안전, 농지 또는 구거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 이처럼 여러 부서가 걸쳐 있는 사안일수록 행정청 내부의 협의가 필요하다.
. 그런데 행정청이 내부 협의 대신 “어느 부서 소관인지 불명확하다”는 태도를 취하면, 민원인은 행정조직 바깥에서 부서 찾기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 셋째, 판단의 출발점을 민원인의 단정으로 바꾼다.
. 이 사건에서 중요한 대목은 “민원인이 우수 배수시설을 석축과 동시에 설치했다고 주장하면 개발행위 미신고로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행정청 안내이다.
. 행정청이 현장 확인과 자료 검토를 통해 판단해야 할 사실관계를, 오히려 민원인에게 먼저 특정하라고 요구하는 구조가 된다.
– 넷째, 불확실성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 행정청은 사실관계가 불확실하면 현장 확인, 자료 요구, 관련 부서 협의, 관계인 의견 청취 등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 그러나 회피성 답변에서는 불확실성이 조사의 이유가 아니라 미조사의 이유가 된다.
– 다섯째, 최종 회신은 간단해진다.
. 처음에는 여러 가능성을 말하지만, 마지막에는 “처리 곤란”, “행정처분 대상 아님”, “민사로 해결할 사안”, “자료 부족” 등으로 정리된다.
. 그 사이에 민원인이 제기한 원래의 질문은 사라져 버린다.
. 이것이 행정청 회피성 답변의 핵심 구조이다.
행정청의 회피성 답변은 반드시 거짓말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부분적으로 맞는 말들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 “민사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은 맞을 수 있다.
: “사실관계가 불명확하다”는 말도 맞을 수 있다.
: “개발행위 해당 여부는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도 맞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말들이 결합되는 방식이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들이 모이면, 때로는 전체적으로 회피적인 결론이 완성된다.
관련 기록: 「사건기록 12. 행정청의 회피성 답변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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