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기록 12. 행정청의 회피성 답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행정청의 답변은 언제나 명시적인 거부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소관이 아니다”, “민사 문제다”, “사실관계가 불명확하다”, “현재로서는 처리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나타난다.

겉으로 보면 각각 다른 답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구조를 따라가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 행정청은 민원인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을 직접 판단하지 않고, 판단의 출발점을 계속 다른 곳으로 옮긴다.
– 그 과정에서 민원인은 처음 제기한 문제에서 벗어나, 소관 부서 찾기, 사실관계 입증, 민사와 행정의 구분, 개발행위 해당 여부, 현장 확인 필요성 등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위치로 밀려나게 된다.

매수인이 매입·전입하여 거주 중인 부동산 주변에서 우수 배수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는 비가 올 때 대지 마당과 석축 주변에서 물이 흘러나와 인접 토지 또는 하단 토지에 침수 피해 유발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민원인은 이 문제가 단순한 이웃 간 다툼인지, 아니면 건축물의 대지 안전, 우수 배수시설, 석축, 형질변경, 개발행위 미신고 등 행정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안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민원인은 ○○군청에 우수 배수시설과 관련된 현장 확인을 요청하였다. 민원의 취지는 “누가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가”가 아니었다. 민원의 핵심은 다음에 있었다.
– 첫째, 해당 대지 마당에 빗물 배출 또는 처리 시설이 적정하게 설치되어 있는가.
– 둘째, 우수 배수시설이 인접 토지에 피해를 주는 구조로 설치되어 있는가.
– 셋째, 석축·형질변경·우수 배수시설이 함께 검토되어야 하는 현장 행정 사안인가.
– 넷째, 행정청이 현장 확인을 통해 위반 여부 또는 조치 필요성을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가.

그러나 민원 처리 과정에서 문제는 곧바로 본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군청은 우수 배수시설 문제를 행정청이 직접 확인해야 할 사안으로 보기보다, 민사 문제 또는 소관 불명확 문제로 취급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민원인은 해당 군청을 상대로 하는 행정심판까지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군청 측에서는 내부 회의를 거쳐, 민원인이 “우수 배수시설이 석축을 설치할 때 함께 설치되었다”고 주장하며 개발행위 미신고 취지로 민원을 넣으면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안내를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문제가 생긴다.
민원인은 우수 배수시설의 정확한 설치 시점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행정청의 안내는 사실상 민원인에게 특정한 사실관계, 즉 “석축과 동시에 설치되었다”는 구성을 전제로 다시 민원을 제기하라는 방식이었다.

민원인은 가능한 자료를 정리하여 제출했지만, 최종적으로 ○○군청은 처리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회신하였다.

결과적으로 처음 제기된 질문, 곧 “우수 배수시설이 현장 행정상 확인되어야 할 문제인가”라는 질문은 명확한 판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신 민원은 민사 문제, 소관 문제, 사실관계 불명확 문제, 개발행위 미신고 문제로 계속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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